문순C, MBC 생방송 토론회 더보기 7, 정치는 사랑이다 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7> 정치 방송사 사장을 마치고 민주당 비례 대표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방송사 사장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권으로 가면서 비판을 제법 받았습니다. 18대 국회는 정말 최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충돌과 몸싸움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디어법과 4대강 예산 등을 둘러 싼 갈등이4 년 내내 지속됐습니다. 18대 국회 의원 임기를 채 마치기 전에 강원도지사로 출마를 하게 됐습니다. 토종 감자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3년의 임기 동안 제법 큼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동해안 경제 자유 구역, 레고 랜드 유치, 춘천-속초 간 철도, 여주-원주 간 철도, 유엔 생물 다양성 총회 등등! 잘 성공시키겠습니다. 도민들과 가장 낮은.. 더보기 6, 삼순이 맞아? 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6> 삼순이 맞아? 갑자기 방송사 사장이 되면서 ‘쓰나미’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장이 됐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과정입니다.) 저 자신도 사장직이 참으로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사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방송을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둘째 ‘방송도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과제는 달성했다고 자부합니다. 당시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인사권, 편집·편성권에 대해 전혀 간섭받지 않았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대통령과 방송사 사장들은 언제나 서로 통화하며 인사와 편집 방향에 대해 상의해왔습니다. 노 대통령은 저에게 인사권, 편집·편성권에 어떤 형태로든 .. 더보기 5, 방송 기자 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5> 방송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대비해서 방송사들이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했습니다. 그 덕분에 방송사에 입사했습니다. 동기생이 300명이 넘습니다. 직장을 얻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검은 것을 희다고 하고 흰 것은 검다고 할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시의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괴로웠습니다. 시위 현장에 가면 학생들이 우리들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요즘 시위대는 참 점잖습니다) 갈등도 많았고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1987년 6월 명동성당에서 이른바 6·10 항쟁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후배들과 함께 현장에 파견됐습니다. 현장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해서 회사로 보내면 방송에는 엉뚱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명동성당 부근에 .. 더보기 4, 영어 교육 피해자 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4> 영어 교육 피해자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영어학을 전공했습니다. (내가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피해자이고 또 대표적인 표본입니다. 대학원 논문도 영어로 썼는데 미국 사람 만나면 무조건 도망갑니다. 말을 못 합니다. 한심해서 정말……) 기관총 사수 군대 생활은 화천 북방 7사단 8연대에서 했습니다. 철책을 지키는 사단입니다. 박정희 사단이고 정승화 사단이기도 합니다. 주특기로는 104를 받았습니다. 주특기 104는 M-60이라는 이름의 기관총 사수를 말합니다. 실제로 기관총을 쏘는 일은 고참이 하고 나는 졸병이어서 삼발이라는 돼지발톱처럼 생긴 받침대와 탄약을 들고 다녔습니다. 엄청 무겁습니다. 7사단은 북한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단 중의 하나입니다. 늘 긴장이 높은 지역이었고 .. 더보기 3, 6·25의 노래 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3> 6·25의 노래 이후 대학 졸업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춘천에서 보냈습니다. 별명은 ‘감자, 굴뚝새(얼굴 색깔 때문에 굴뚝에 들어갔다 나왔느냐고 해서…… ‘최면술’이라는 별명을 고집하던 녀석도 있었습니다)’ 등 이었습니다. 강도 사건 이후 집안이 어려웠지만 어머니가 잘 지탱해주셨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10월 유신이 선포됐습니다. 이후 대학 시절에 자연스럽게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게 됐습니다. 잘하거나 열심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힘의 관계가 워낙 비대칭적이었고 대부분 지하 운동이어서 학생들도 조직화돼 있지를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요즈음 촛불 문화제에 나와 노는 분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당시에 시위를 할 때에 부를 노래가 없어서 를 부르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 더보기 2,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2>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강도가 들면서 행복이 깨졌습니다. 개머리판 없는 캘빈 소총을 든 2인조 강도가 들었습니다.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총격전을 벌여 그중 한 명이 죽었습니다. 한 명은 도망쳐서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분 이 글 읽으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공소 시효도 지났을 테니까 꼭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왜 그분들이 단칸 셋방살이를 하는 육군대위의 집에 거창하게 캘빈 소총을 들고 들어왔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북한에서 온 무장 공비들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지금이라도 만나서 물어보고 싶습니다. 어쨌거나 집안은 풍비박산이 됐습니다. 가족들이 한동안 흩어져 살다가 다시 합쳤습니다. 아버지는 제대 후에도.. 더보기 1, 금병산 자락 완전 촌놈 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1> 금병산 자락 완전 촌놈 1956년생, 강원도 춘천군 신동면 정족2리가 제 고향입니다. 김유정이 살았던 실레마을과 바로 붙어 있는 마을입니다. (김유정문학촌장이신 소설가 전상국 선생님은 은사이십니다) 정족리는 김유정 소설에 나오는 금병산 자락의 궁벽한 시골이었습니다. 그래도 감자와 옥수수 맛이 일품인 곳이죠. (저는 지금도 음식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감자와 옥수수 맛에 대해서는 아주 까다롭게 굽니다) 아버지를 따라서 퇴계원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4학년 때 춘천초등학교로 옮겼습니다. 이때까지 가난했지만 꿈같이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 최문순의 '감자의 꿈' 中에서 더보기 [오직!강원!]_보도자료_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 박지원 이계안 공동후원회장 위촉! 더보기 문순C, 정책선거(매니페스토) 협약식 더보기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3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