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5>
방송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대비해서
방송사들이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했습니다.
그 덕분에 방송사에 입사했습니다.
동기생이 300명이 넘습니다.
직장을 얻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검은 것을 희다고 하고 흰 것은 검다고 할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시의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괴로웠습니다.
시위 현장에 가면 학생들이 우리들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요즘 시위대는 참 점잖습니다)
갈등도 많았고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1987년 6월 명동성당에서 이른바 6·10 항쟁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후배들과 함께 현장에 파견됐습니다.
현장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해서 회사로 보내면
방송에는 엉뚱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명동성당 부근에 2만 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했다고 기사를 보냈는데,
방송에는 200명이 모였다고 나오는 식이었습니다.
더 심한 일도 많았습니다.
현장에서 후배들과 제작 거부로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저는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있다가 해직됐습니다.
요즈음도 계속되는 방송의 정치적 공정성 문제가
당시에도 역시 큰 과제였습니다.
해고된 뒤 1년 만에 복직했습니다.
1987년 중매로 결혼을 했습니다.
집사람을 최루탄이 난무하는 명동성당 부근으로 불러낸 일로
지금도 자주 항의를 받고 있습니다.
딸 둘을 두고 있습니다.
- 최문순의 ‘감자의 꿈’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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