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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의정활동]/문순c네 식구들 이야기

[너心] 교감(交感)

[너心] 교감(交感)


1.

대학 3학년 때의 일이다. 학보사 기자였던 필자는 주간교수(편집인의 자격을 갖지만 주된 일은 학보에 실리는 내용을 검열하는 것이다)가 한 턱 내는 저녁자리에 갔다가 당시 공안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던 동기를 순식간에 잃고 말았다. 그 친구는 한 해 전 ‘정원식 한국외대 난입사건’ 때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고 있던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의 팔짱을 끼고 학교 밖까지 얌전히 데려간 것이 죄가 돼 무려 일 년여 동안 수배상태에 놓여 있었다.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조심했고, 한편으로 교수를 믿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사이인가 따라온 사복경찰들은 길 한복판에서 마치 인신매매범의 그것처럼 봉고차를 이용해 친구를 낚아채갔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사복경찰들은 그렇듯 시민의 모습으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요즘은? 그때로부터 무려 16년여가 지났지만 마찬가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벌어진 사복경찰들의 납치미수 사건 말이다. <조선일보>가 낡은 레코드판의 그것처럼 ‘인민재판’이라는 자극적이고, 농도 짙은 단어로 해당 사건을 왜곡·날조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출처: 조선일보 6월 28일자>

2.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운이 좋지 않았다. 분명 육군으로 입대했는데 어느 사이에 내무부(현 행정안정부) 소속이 돼 있었다. ‘전투경찰순경’이 된 것이다(전경에도 두 부류가 있다. 필자처럼 차출된 이들이 있고, 지원해 가는 이들이 있다. 지원자는 의무경찰순경이라고 부른다). 다시 육군으로 보내달라는 한 전경의 외침이 내겐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3.

94년도는 꽤 치열한 ‘전투’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을 앞두고 연일 격렬한 집회와 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벌어졌다.

어느 날인가 우리 중대원 50명은 덕수궁 돌담길 초입에 배치가 됐다. 그날은 서울 시청 앞 광장에 10만여명의 시위대가 운집할 것으로 알려진 터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무기는 곤봉과 방패, 그리고 개인별 사과탄(수류탄 모양의 최루탄으로, 모양이 둥근 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두 발이 전부였다. 후속부대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중대원들 모두 ‘이젠 죽었구나’를 되뇌고 있었다.

다행히 당시 집회는 시청 앞 광장에서 명동성당 쪽으로 가두진출 방향이 잡히면서 조용히 끝을 맺었다. 우리 중대는 멀어지는 시위대의 함성을 들으며 풀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철수를 할 무렵이었다. 난데없이 뒤쪽에서 동료 전경들의 복창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도대체 다들 어디 있었던 걸까. 어림잡아 500여명도 넘어 보이는 부대가 미대사관저 앞에 ‘인(人)의 장막’을 치고 있지 않은가. 그들 뒤에는 마치 ‘후퇴란 없다’를 웅변하듯이 다연발 최루탄 차량 세 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

만약 시위대가 미대사관저로 진출했다면 제일 먼저 우리 중대원 50명이 가차없이 깨졌을 것이고, 그 다음은 그들 500명이 꽉막힌 2차선 도로 위에서 장렬히, 정말 처절히 깨졌을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동안 지휘관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출처: 동아일보 6월 30일자>

4.

6월30일치 조선일보, 동아일보 1면에 시민들에게 몰매를 맞는 한 전경의 모습이 실렸다. 보는 순간 ‘아’하는 탄식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이런 식으로 또 엮이는구나.’

그러나 나중에 전체적인 상황을 접하곤 불현듯 예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한무리의 진압부대가 왜 본대의 조직적인 지원도 받지 않은 채 격앙돼 있는 집회 군중들 속으로 쏜살같이 뛰어든 것일까. 그들은 한마디로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14년 전 내게 주어졌던 임무처럼 말이다.

6월29일 자정을 막 넘어 새벽으로 가던 그 시간을 그들 전경들 또한 영원히 버림받은 시간으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by 투덜스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