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과는 생각이 같지 않다
<출처: 미디어오늘>
1.
촛불집회는 재밌다. 아이디어가 만발한다. 재밌는 일화가 많다. 어떤 일화는 마흔 줄에 들어선 구시대 386은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화들이라서 기발하다 못해 어떤 질투심까지 느껴졌다.
예를 들면, 전경들이 앞을 막아서며 곤봉을 들거나 방패를 휘두를라치면 그 앞에선 여학생들이 “어머 이 아저씨 미쳤나봐”하고 그냥 간다는 거다. 우리 세대는 고함치면서 함께 주먹질을 하거나 씩씩거리다 그냥 맞았을텐데. 또 재미난 것은 요즘 유행하는 어떤 광고의 노랫말처럼 “막으면 돌아가면 되고......” 하고는 전경이 안 막고 있는 골목으로 스물스물 스며든다는 거다.
그밖에도 일화는 많다. 새벽에 물대포 쏘면 “온수로!”를 외치고, 전경이 버스에 올라서면 “개인기!”를 외치는 발랄함은 우중충한 386에겐 마냥 부러운 상상력이다.
“니가 첨이다. 공약 지킬까봐 겁나는 정치인은” 이런 구호도 재밌고, KBS를 ‘고봉순’, MBC를 ‘마봉춘’이라 부른 것은 한참을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사실은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 알았다).
이들이 또 어떤 상상력으로 날 놀래 킬 지 촛불집회에 나갈 때 마다 은근히 기대되는 바였고, 집회장에 가면 그 싱싱한 상상력을 찾아 헤매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70년대나 6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선배들에 비하면 80년대 학번인 내가 비할 바 아니지만, 음반, 영화, 만화 등 모든 영역에서 사전검열이 있던 시절에 대학을 다닌 80년대 학번은 사실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마치 일제시대 식민지 지식인처럼 지사적인 운동을 강요받았고, 오직 결의에 찬 분노만이 멋있는 생존전략이라고 생각한 세대의 상상력은 자기 검열체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검열 없이 맘껏 표현의 자유를 누려 온 그들이 부럽고도, 부럽다.
2.
“나는 당신과는 생각이 같지 않다. 그러나 당신의 말할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나는 내 목이라도 내놓을 용의가 있다”
오늘 아침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최근 논란이 되는 조중동 광고 항의 댓글과 관련된 글들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기사를 보고 떠오른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의 말이다. 한마디로 순간적으로 분기탱천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 목이라도 내놓을 용기가 있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다.
표현의 자유는 때로 자신의 목숨을 내거는 용기가 있어야 지켜지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음반이나 영화에 대한 검열이 존재했던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적을 쓴 김지하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보도지침 사건을 폭로한 기자와 언론인은 오랜 수배와 감옥생활을 했으며, ‘운동권’ 작가가 아닌 감성적 문체의 스타일리스트 한수산은 정말 우습기 짝이 없는 이유로 군사정권(당시 전두환 정권)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한수산은 자신을 모질게 고문했던 보안사의 사령관이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를 몇 년간 떠나있기도 했고, 모든 추상명사(우정, 연대, 사랑, 정의감 등등)를 잃어버리고 10여년 가까이 절필을 하기도 했다.
인권변호사 한승헌은 ‘즐거운 사라’로 ‘정치적’ 필화 사건이 아닌 ‘성적’ 필화 사건에 휘말려 구속되었던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변론을 맡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가 자짓 구설에 휘말릴 수 도 있는 사건의 변론을 기꺼이 맡았던 것은 마광수의 개방적 성담론이 아무리 비위에 거슬린다 해도 그의 표현의 자유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더더구나 작가를 인식 구속하다니!
그런데,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인신구속과 고문을 감내하며 지켜낸 표현의 자유를 사법기관의 공안원들도 아닌 방송통신심의위원들이 누구 맘대로 짓밟는단 말인가?
가당치않다.
“평화적 상황이면 허용 될 수 있는 글도 있지만 지금은 수십만명이 시위에 나서고 있는 특별한 상황”이라서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우는 자들에게 무슨 양식을 기대할 수 있을까만, 선배들의 목숨을 건 투쟁을 생각할 때 지금 우리는 도저히 타협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위헌소송내고, 판결무효 가처분 신청 내야 한다는 성명서도 우리 의원실에서 오전에 나왔다. 나쁜넘들!
이것이 오후 2시까지의 상황이다.
3.
이 글을 쓰다가 인터넷에서 이것 저것 검색을 하며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던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내 촌스러운 상상력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이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오늘도 조중동에 광고한 자들의 명단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라니!
또 있다. 이 자들이 다국적 기업 구글에게도 게시물 삭제를 요청할 수 있을지 함해보자는 거다. 재밌다.
내 결의에 찬 분노가 약간 쑥스럽기까지 하다.
‘항의’라는 표현이 ‘칭찬’이나, ‘사랑’으로 바뀌어 검열을 피하자는 아이이더는 며칠 전부터 나왔고, 갖가지 상상력이 이 와중에 또 다시 쏟아져나온다.
그래, 이렇게 함 계속해보자!
그러거나 말거나!
by 엉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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