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좌충우돌 의정활동]/문순c네 식구들 이야기

[너心] 돌아온 탕아 ‘공안’이

[너心] 돌아온 탕아 ‘공안’이


1.

너무 무서웠다. 4.19 혁명기념일날 선배들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 이른바 ‘교문박치기’를 나섰을 때 난 내 앞을 막아선 전투경찰들이 흉측스런 괴물로 보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오크군단처럼 보였다고 할까. 게다가 동기 가운데 한 녀석은 앞서 4.3 항쟁 추도일 날 선배들의 권유로 가방에 한가득 화염병을 넣고 인근 노동청으로 향했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그즈음 발표된 화염병 처벌법의 첫 희생양으로 구속된 터였다. ‘데모’는 그렇게 두려운 행위였다.


우리들이 겁을 상실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심하게 무릎 관절염을 앓던 여자 동기가 그 몸으로 이후 계속된 가두시위에 나섰다가 ‘복날 개마냥’ 폭행당해 끌려갔다는 소식에 더 이상 두려움에 떨며 강의실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가두에서 “해체 민자당, 타도 노태우”를 외치지 않으면 동기가 돌아왔을 때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야만의 공안정국이었다.


2.

요즘 촛불시위를 보면서 난 가끔 내 학창시절이 스스로 ‘짠해진다’. 시위를 하더라도 지금처럼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거리에 나올 수 있는 정서였다면, 또 밤새 노상에 앉아 시국을 토론해도 누가 뭐라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대한민국은 다이내믹 코리아 아니겠어.”


하지만 살짝 꼬아보면 지금 상황이 영 마뜩치만은 않다. 어쩌다가 민중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됐단 말인가. 성명미상의 당신들 탓인가, 아님 위정자들의 탓인가. 그도 아니면?


3. 

이명박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21주년 기념식이 열리던 날 저녁 청와대 뒷산-정확히 말해 대통령 관저 뒤편 언덕 망루로 추정된다-에 올라 2004년 탄핵정국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과 비슷한, 그래서 누구는 표절이라고 하는 유명한 말씀을 한 마디 남겼다고 한다. “청와대 뒷산에서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며 제 자신을 자책했다”고.


내 경험상 추측컨대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한창 공사 중인 광화문 넘어, 그것도 컨테이너 장벽에 가로막혀 위용을 드러내지 못한 인파만 봤을 것이다. 더군다나 청계천로와 서대문로, 그리고 불탄 숭례문 앞을 가득 메운 민심은 장소 사정상 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엉뚱한 얘기를 한다. “국가 정체성 도전 시위에 대해선 엄격히 대처”하겠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행동대장 어청수 경찰청장은 즉각 △촛불시위 주최단체 집행부 체포영장 신청 △적극 가담자와 선동자에 대한 추가 사법조치 △장기간 도로점거 및 과격 폭력 행위자 현장체포 등의 방침을 읊조린다. 고약한 공안정국의 망령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민중들은 때리면 때릴수록 시퍼렇게 날만 설 뿐이다. 설상가상 다이내믹 코리아의 시절이 아닌가.


*너心 : 예전에 여의도는 ‘너섬’이라 불렸다. 홍수로 섬이 잠길 때 지금의 국회의사당이 있는 양말산만은 잠기지 않고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부근 사람들이 그것을 '나의 섬', '너의 섬'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너心’은 여의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필자의 심정을 일컫는다.

                                                                by 투덜스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