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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의정활동]/문순c 이야기

시사IN기고_본회의장 점거기(작전명 '에델바이스' 이틀 전 극비 침투)


 

* 문순c가 시사IN 2009 1/10 제 69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본회의장 점거기
    
           결국 이번에도 방송 보도가 문제다. 
       -촛불 시위 때 그랬던 것처럼-

 

 

1. 싱거웠던 본회의장 점거


  성탄절 다음날인 26일 오전 8시 30분, 의원 총회가 소집됐다. 민주당에서 이미 문화방송위원회와 행정안전위 그리고 정무위원회를 점거한 상태였고 매일 의원 총회가 열리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의원 총회였다. 평소의 회의처럼 원혜영 원내대표가 인사말을 시작했다. “의원 여러분들 연일 고생이 많으십니다.” 평범하고 상투적인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지금부터 본회의장을 점거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들께서는 모두 저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방을 나가 줄지어서 본회의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부의장이 드나드는 문을 통해서...평범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아무런 저항도, 아무런 비밀 작전도 없었다. 문이 열려있는 본회의장으로 그냥 평소처럼 걸어 들어간 것이다. 본회의장 점거는 이렇게 싱거웠다.


  어떻게 들어갔을까? 추측이 난무했다. 답은 ‘사전 침투’다. 이틀 전에 소수의 의원들이(그 명단은 밝히지 말라고 지시를 받았다.) 본회의장에 먼저 들어갔다. 열려져 있는 문을 통해서... 그리고 이틀간 본회의장에서 숙식을 했다. 모두 5명이 교대를 해가면서... (한 분은 코를 골기 때문에 매우 노심초사하며 잠을 잤다고 한다. 다른 한 분은 숨어 있던 중에 갑자기 청소를 하는 분들이 들이 닥치는 바람에 좁아터진 기표소 안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민주당 의원들이 몰려오자 안에서 문을 열어준 것이다. 너무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다. 열쇠를 만들거나 문을 부수거나 강제로 밀고 들어간 것이 아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여러 개의 출입문에 경첩이 4-5개씩 달려 있었다. 그리고 경첩을 다는 공사를 하다 남은 장비들(사다리, 남은 경첩 등)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국회 사무처에서 공사를 했다고 했는데 한나라당이 먼저 진입해서 민주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시설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이것이 나중에 자승자박이 됐다.  

 

 

 

2. 결사항전

 

   본회의장 점거 후 하루에 두 차례씩 의원총회가 열렸다. 오전 10시와 오후 5시, 인원 점검과 전략 토론, 쟁점 법안에 대한 설명회 등이 겸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이 쳐들어오는 것에 대비한 예행연습이 몇 차례 이루어 졌다. 국회법상에는 모든 의결은 ‘국회 의장석에서만’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다수당이 국회 의장석이 아닌 곳으로 장소를 옮겨서 날치기 통과를 자주했기 때문에 소수당들이 요구해서 만든 조항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행연습은 어떻게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끌려 나가지 않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 졌다. 


  국회의장석에서 어떻게 끌려 나가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핵심이었다. 우리가 잠시 저항하다가 끌려 나가고 그 후에 한나라당이 언론관계법이나 한미 FTA 비준안 등을 자기들끼리 날치기로 의결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끌려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서로 몸을 묶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보니까 누군가 이것을 인간사슬이라고 표현했다. 어떻게 인간 사슬을 만들 것인가? 서로 몸을 묶자! 좋다. 무엇으로 묶을 것인가? 쇠사슬로 하자! 좋다! 그렇게 결론이 났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흐르고 흥분 상태가 가라  앉으면서 이견이 제시됐다. 아무래도 쇠사슬이 좀 부담스럽다. 맞다. 그러면 다른 걸로 해보자. 좋다! 무엇으로 할 것인가? 씨름할 때 쓰는 샅바가 좋겠다! 그게 쇠사슬보다 좋다. 그렇다. 그래서 씨름 샅바가 준비됐다. 그런데 막상 씨름 샅바를 써보니 너무 두껍고 다루기가 쉽지 않다. 이것도 안 되겠다. 그러면 무엇으로 할 것인가? 등산용 자일이 좋겠다! 그래 그거 좋다! 모두 만족했다. 젊잖기도 하고 튼튼하기도 하고,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등산용 자일이 인간 사슬의 도구로 선택됐다. 이것이 우리를 지켜 줄는지....

 

 

 

3. 의-식-주

 

   본회의장에서 생활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갑갑하다. 작은 출입구 한군데를 빼고는 모든 문을 봉쇄했기 때문에 공기가 아주 탁하고 건조하다. 상당수 의원들이 감기에 걸려있다. 심지어 한나라당이 빨리 들어와서 끌어내 줬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하는 의원들도 있다.


  식사는 주로 도시락이다. 의원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메뉴는 (충무)김밥이다. 비빔밥, 북어국 등등 배달 가능한 메뉴가 한 바퀴 돌아 다시 반복되고 있다. 상당수 의원들이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의원들끼리 서로 전투를 앞두고 사육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든다. 싸우기 전에 몸무게를 최대한 늘여야 한다. 끌려 나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려면...


  잠을 잘 자기는 매우 어렵다. 최소 50명에서 최대 79명까지(가장 많이 참석한 날 83명의 의원 중 79명이 함께했다.-의장실 점거 인원 등을 빼면 전원이 참석한 인원이다.) 한 방에서 자려니 우선 기본적인 소음이 있다. 한 쪽에서는 새벽까지 전술 토론과 논쟁이 계속되고 코고는 소리에서 기계 소음까지.....게다가 조명도 계속 켜져 있다. 본회의장 바닥이 경사가 져 있어서 자다 보면 흘러내려 이것도 불편하다. 침구가 부족해 인원이 많은 날은 이불 없이 그냥 잔다. 어쨌거나 처음 들어간 하루 이틀은 거의 잠을 못 잤다. 그런데 2-3일 지나니 그냥 적응이 되는 데 잠을 잔다기 보다는 정신을 잃는다는 표현이 더 가깝다. 노숙자도 3일이면 적응된다고 어느 의원이 그러던데 전적으로 사실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운동 부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분이 박지원 의원이다. 그 분은 본회의장 테두리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 운동을 개발했다. 그 분 말에 따르면 한 바퀴를 돌면 150보라고 한다. 이 분은 매일 40바퀴 그러니까 6000보를 걷는 다고 한다. 최근에는 팬클럽이(주로 여성 의원들) 생겨 따라 걷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운동량을 늘리기 위해 물병을 하나씩 들고 걷는다.

 

 

 

 

 

 

4. 협상과 결렬, 또 협상


  민주당의 최종 목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악법들을 막아내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2008년 연말을 넘기는 것이 1차 목표이다. 그리고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2009년 1월 8일을 넘기는 것이 2차 목표이다.
  지금 시기상의 목표로만 본다면 겨우 1차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을 본질과 직접 관계가 없는 전술상의 목표일뿐이다. 최종적인 목표인 악법 저지를 해 낼 수 있을 것인가가 본질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두 가지 뿐이다. 즉 1) 본회의장은 물론 국회의장석을 끝가지 점거하는 방법 2) 한나라당과 협상을 통해 쟁점 법안들을 합의 처리하는 방법 이 두 가지 뿐이다.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한 뒤 한나라당의 대화 제안으로 협상이 진행됐다.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는 협상이 난망하다는 전망을 자주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행 통과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나라당이 연말까지 틀림없이 통과시키겠다고 먼저 청와대에 얘기했다는 말이 나돌아서 누가 주범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거쳐 날치기 통과를 하려고 하는 법안은 모두 85개다. 국회가 아니고 정부에서 만든 법안들이다. 그런데 정부 입법으로 하지 않고 의원 입법으로 발의를 했다. 정부에서 법안을 만들어 한나라당 의원들 개개인에게 한두 개씩 할당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정부입법보다 의원입법이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속도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 국회에서 논의한 적이 전혀 없는 법안들이다. 예를 들어 언론 장악 7대 악법은 12월 3일에 내놓은 것이다. 여야 갈등이 시작되기 전인 불과 보름 전이고 한창 예산 심의에 정신이 없던 때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법안을 본적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래 놓고 그냥 통과시켜 달라는 것이다.


   큰 쟁점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가 언론 관련법이다. 두 번째로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셋째 금산분리 완화법이 문제이다. 이 순서대로 여야간 이견이 크다. 최종적으로 남을 사안은 언론 관련법이다.

 

 

5. 결국 언론 전쟁, 보도 전쟁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언론 전쟁이다. 언론 단체, 시민사회단체가 언론 장악 7대 악법이라고 이름 붙인 이 법들이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것이다. 이 언론 법안의 개수는 7개지만 그 내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가 신문-방송의 겸영 허용 둘째가 대기업과 외국자본의 방송 진출 셋째 사이버 모욕죄다.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면 “신문과 대기업이 지상파나 케이블에 ‘보도(뉴스)’가 가능한 방송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지상파 방송의 지분을 가지고 또 케이블에 새 방송사를 허가한다는 것이다. 이 언론 전쟁을 더 압축해서 말하면 '보도 전쟁‘이다. 신문과 대기업이 합작하여 ’보도(가 가능한) 방송사‘를 운영하게 해 준다는 것이 이번 법안의 핵심이다. 보도가 아닌 다른 채널에는 지금도 신문과 대기업이 진출할 수가 있다. 


  문제는 보도인 것이다. 역시 문제는 보도였던 것이다. 촛불 시위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