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 시인 김수영이 1961년에 쓴「누이야 장하고나!」라는 시는 “누이야 /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김지하는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라는 산문에서 김수영이 던진 화두에 70년대식 답을 한다. (김지하가 ‘해탈’을 ‘자살’로 바꾼 것이 의도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누이야 장하고나!」는 4.19 혁명이 5.16 쿠테타에 짓눌려 실패로 돌아갈 즈음에 쓰여 진 시이고,「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라는 산문은 쿠테타의 주역인 박정희 정권의 폭압 아래 쓰여 진 글이다.
두 시인 모두 ‘희망’이 절망으로 변해가고, 그 절망이 점점 깊어만 가는 현실 속에서 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의 선언적인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각성한 자의 결기가 서슬 퍼렇다는 것이다.
“현실의 모순이 있는 한 풍자는 강한 생활력을 가지고, 모순이 화농하고 있는 한 풍자의 거친 폭력은 갈수록 날카로워진다. 얻어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자, 사지가 찢어져도 영혼으로 승리하려는 자, 생생하게 불꽃처럼 타오르려는 자, 자살을 역설적인 승리가 아니라 완전한 패배의 자인으로 생각하여 거부하지만 삶의 고통을 견딜 수가 없는 자, 역학(力學)을 믿으려는 자, 가슴에 한(恨)이 깊은 자는 선택하라. 남은 때가 많지 않다. 선택하라, '풍자냐 자살이냐.”
김지하 시인의 글이다.
이 김지하 시인에게 ‘미술’에 관한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젊은 시절 함께 대화한 이가 유인촌 문화부장관에게 계약을 해지당한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이다. 참여정부에서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선생과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김홍남 선생이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 김윤수 관장에게 강의를 듣기도 했다.
김윤수 선생은 마치 딸깍발이 선비 같은 분으로 알려져 있다. 고집 세시고 원칙적이라서 그런 말씀을 자주 듣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려운 시절 『창작과 비평』의 발행인으로 민예총 의장으로 문화운동의 맏형 역할을 하셨고, 환갑이 다 되신 나이에 늦깎이 결혼을 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윤수 관장이 계약 해지 당할 것이란 소식을 11월 7일 오전에 확인했는데, 그 당시는 유인촌 장관 말대로 열이 뻗쳤지만 며칠 지나 문화부와 한나라당이 김윤수 관장 계약 해지를 두고 하는 꼴을 보니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께서 쓴 시에 ‘아, 탄압이라도 받아봤으면!’ 뭐 이런 구절이 기억나는데 (그는 요즘 좀 탄압받고 있다) 선생께서 뒤늦게 저런 유치한 탄압을 받게 되다니 씁쓸하고 또 씁쓸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현실이다.
유치하고, 치사하고, 좀스럽지만 싸워야 한다, 아주 더 지혜롭게, 그리고 그 옛날 시인들의 결기를 떠올리며 한층 치열하게.
by 엉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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