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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경찰서 유람기]- 영화 ‘살인의 추억’을 추억함 -

 
   [동작경찰서 유람기] 

             

                                 - 영화 ‘살인의 추억’을 추억함 -  


봉준호 감독의 수작(秀作), 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컷을 기억하는가?

극중 주인공인 송강호(그는 그야말로 순박한 시골 형사다. 그러나 범인은 미치도록 잡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하고 십 수 년이 흘러 초로에 접어든 어느 날 처음 시체가 발견된 농수로에서 물끄러미 관객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연출은 금기시 되지만, 봉준호 감독은 과감하게 그것도 엔딩 컷으로 약간 섬뜩한 기운을 실어 송강호가 관객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이 컷은 작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난 감독의 의도에 충분히 공감했다.

내가 생각한 감독의 의도는 이런 거다.

“당신들,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들도 공범일지 몰라,

그때 난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었거든, 그런데 너무 힘들었어.

이놈의 사회가 범인을 잡게 도와주지 않았단 말이야.

틈만 나면 데모해서 전경들 다 빼가고, 틈만 나면 나라를 시끄럽게 해서

진압 나가게 하고, 도대체 범인 잡을 시간도, 인력도, 돈도 지원해주지 않았단 말이야.

동네 여고생, 처녀, 아줌마 하나 둘 씩 죽어 나가는데 말이야......

그때 난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었거든 미치도록......

당신들, 영화를 보는 당신들 날 욕하면 안돼......“

 

물론 나의 자의적인 해석이지만, 실제 영화를 보면 정말 답답한 상황이 계속된다.

화성이란 촌 동네의 경찰들은 과학수사에 대한 기초상식도 없고, 장비도, 인력도 없다.

연쇄 살인 사건에 언론은 난리인데, 나라는 시끄러워서 수색하고 보초서야 하는 전경이나, 의경들은 데모 막으러 결정적인 순간에 서울로 가버리고, 살인은 계속되고, 속은 타들어가고...... 송강호의 답답한 마음은 어디 희생양이라도 찾지 않으면 풀지 못할 방향으로 나아가고, 수개월이 지나 미국에서 돌아 온 DNA 검사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난다. 관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송강호의 시선을 남겨둔 채.


지난 목요일 저녁 KBS 앞에서 경찰에 번쩍 들려 닭장차에 태워졌다. 성유보 선생,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정청래 전 국회의원, MBC 박성제 노조위원장 등과 함께 동작경찰서로 끌려갔다. 총 11명이 동작경찰서로 갔는데 그중 앞의 세 분과 함께 동작경찰서 지능수사팀 사무실에 배치됐다.

 

▲ 경찰이 7일 밤 KBS사옥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시민들과 베이징 올림픽 한국 대 카메룬 축구경기

길거리 응원전을 펼치던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을 강제연행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우린 한국과 카메룬 대표팀의 올림픽 축구경기를 차도가 아닌 인도에서 응원하다가 경찰에 끌려왔기 때문에 ‘죄’ 없음을 주장하며 경찰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유치장에 입감도 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어떻게든 빨리 해결했으면 하고 우릴 설득해서 조사를 좀 받으라고 애원하다 시피 했지만 - 정청래 전 의원께서 워낙 완강했다. - 우린 동조하지 않았다. 정청래 전의원은 아예 모든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경찰서에서 제공한 밥도 안 먹었고, 잠도 자지 않았고, 석방 결정이 났을 때도 동작경찰서 3층 복도에 앉아 나오지도 않았다.(우리 세 명은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는 확인해 주었고, 배고파서 밥도 먹었다. 금요일 날 점심엔 말복이라고 삼계탕이 나와서 삼계탕도 먹었다) 내가 경찰서에서 나올 때까지 정청래 전의원은 이 상황에 대해 어청수 경찰청장이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서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버텼다. 경찰서에서 나온 지 하루가 지난 지금, KBS 앞에 같이 있던 송영길 의원이나 최문순 의원은 잡아오지 않았다고 ‘현직 무죄, 전직 유죄’라는 명언을 남긴 정청래 ‘전’의원이 경찰서에서 나왔는지 몹시 궁금하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는 동작경찰서 지능팀 사무실에서 약 20시간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옛날엔 수사계였다는데 몇 년 전에 지능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했다. 잠깐 여담을 하자면 이 이름 때문에 성유보 선생께서 ‘우리가 지능범이라는 얘긴가?’, ‘지능이 나쁜 사람들은 기분 나쁘겠는데.’ 등의 약간 실없는 말씀도 농담으로 하셨다. 원래 이분들의 본업은 절도범, 단순강도, 사기범 등 그야말로 민생침해사범을 검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20시간 동안 - 책상배치로 봐서 지능팀은 총 11명이었고 7명 정도가 우리와 밤을 함께 샜다 - 그들 중 한 형사만이 어떤 아줌마, 아저씨를 약 2시간 정도 조사하는 것을 보았다.

 

팀장은 4일째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열 뻔쯤은 했다. 금요일 오후 5시에 석방되었는데,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는 우리보다 더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한 형사는 내일 절도범 잡아야 하는데 오늘도 집에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한 세 번쯤 했다. 그 다음날 그는 우리와 함께 있었고, 절도범을 잡으러 나가지 않았다. 그 다음날 우리와 함께 밤을 새고, 3시쯤 퇴근한 형사는 ‘그렇게 살려면 차라리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라’는 부인의 충고가 있었다는 말을 남기고 몹시 피곤한 얼굴로 지능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들 책상마다에 조계사 잠복근무 조별 리스트가 적혀있었고, 유일한 여성으로 보이는 형사는 금요일 오후에 출근했는데 조계사에서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 당직도 서야하고, KBS와 가까운 덕분에 요즘처럼 KBS 앞 시위가 격렬해지면 그 일도 떠맡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정청래 전의원처럼 조사에는 일절 응하지 않거나, 언론노조위원장, MBC노조위원장처럼 자연스레 취재진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데, 그 짧은 시간에 면회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배치되었으니 나오는 게 한숨이고, 쏟아지는 것이 잠뿐이 더 있겠는가?


그러니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동작구의 잡범들, 민생침해 사범들만 살판난 셈이다.

그러나 이게 어디 동작구뿐만의 일이겠는가? 대규모 시위가 있으면, 어김없이 각 지방까지 전경과 그 지휘관들이 차출 되고, 형사들도 시위대 속에 프락치가 되거나, 골목골목 잠복을 하여 시청, 광화문, 종로, 명동거리를 밤새도록 어슬렁거리니 민생침해 사범이 잡힐 리 있겠는가? 촛불이 켜지고 벌써 90여일, 세 달 가까이 민생침해 사범들의 천국이 된 것이다.


아마도 지난 참여정부 5년간 범죄 발생 건수, 그리고 검거율과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범죄 발생 건수와 검거율을 비교하면 단언컨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범죄율은 높고 검거율은 현저히 낮을 것이라 난 확신한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빌려 80년대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응시했다.

동작경찰서에서 난 그 20년 전의 살인의 추억과 똑 같은 풍경을 목도했다.

이명박 정권은 이미 경찰 없인 단 하루도 못 버틸 정권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앞으로 4년 7개월 이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경찰들도 못할 짓이다. 이길준 의경처럼 양심선언하거나 때려 치고 장사 할 경찰들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등골 빠지는 것은 물가에 치이고, 민생사범에 치이는 서민들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권한다. 봉준호 감독의 명작 ‘살인의 추억’을 한 번 보라고.


P. S

동작경찰서 지능팀 여러분 힘내세요.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그래도 여러분들의 본업은 민생침해 사범 잡는 것입니다.

가급적 여러분들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충심으로 바랍니다.

 

  

 

                                                                                                  by 엉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