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순C의 약속이행/소득2배 행복2배

[일요서울] 돌격대장형 송영길 vs 서민친화형 최문순

기사원문보기

송영길, 삼성바이오단지 유치 최문순, 등록금 없는 도립대 추진

▣ 글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2011-08-22 12:08:56

[전수영 기자] 송영길 인천광역시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민주당 출신으로 자치단체장에 오른 것 빼고는 비슷한 점을 찾기가 어렵다. 굳이 찾는다면 송 시장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었고, 최 지사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으로 언론민주화운동을 했었다는 점 정도다. [일요서울]은 지난 902호에 이어 2차로 서울과 인접한 인천시와 강원도의 민주당 출신 도백 두 사람을 살펴본다.

인천시장과 강원도지사 자리가 정치적인 영향력에서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백으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경우 향후 유력인물로 자리 잡을 수 있어 송영길 시장과 최문수 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인천시와 강원도는 2014년 아시안게임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를 앞두고 있어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다.


.



또한 두 지역은 북한과 접경지역임과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개발 위주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인 부분이 많다.

정치인으로 주목 받다가 인천시장이 된 송 시장, 정치인 때보다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최 지사, 이 두 사람의 도백으로서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송영길, 할 말은 하고 말하면 밀어붙인다

송 시장은 큰 키에 굵은 목소리로 잘 알려져 있다. 송 시장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것은 국회의원 당시 TV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굵은 목소리에 직설적인 화법이 합쳐지면서 송 시장은 국민들에게 시원함을 안겨주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여당 시절이든 야당 시절이든 상관없이 송 시장은 그런 특유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고 볼 수 있다.

1963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한 송 시장은 광주 대동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입학한다. 1984년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송 시장은 그 때부터 정치 밑거름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대학졸업 후 인천 대우자동차 르망공장 건설현장에 배관용접공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노동운동에 뛰어들기 전, 송 시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서로 일할 것을 제의 받았으나 노동운동에 뜻을 두고 있다며 제의를 거절했다.

이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나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99년 인천 계양구에서 보궐선거가 실시되자 김 전 대통령은 30대 중반이었던 송 시장에게 ‘젊은 피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치 입문을 권유했다. 송 시장은 곧바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386운동권 세대의 맏형 격인 송 시장은 이때부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갔다. 송 시장은 1999년 보궐선거 이후 내리 3선에 성공한다.

정치인이 되었지만 송 시장은 여전히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용산참사,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집회 등 정국 이슈가 된 문제의 중심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입지를 굳혀갔다.

송 시장은 과거에 정치인으로서, 현재는 자치단체장으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송 시장은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MBC의 ‘100분 토론’의 전 사회자인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마지막 방송을 진행할 때도 그동안 ‘100분 토론’을 빛낸 패널로 참여해 논리적인 토론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 굵은 국회의원이던 송 시장은 2010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 야권단일 인천시장 후보로 나와 전임 시장인 안상수 시장과 대결을 펼쳤다. 그 결과 송 시장은 52.69%의 득표율로 44.38%의 안상수 후보를 물리친다. 3선 정치인이 도백으로 선출된 것이다.

인천시장이 된 송 시장은 우선 전임 시장 시절에 세웠던 정책들을 다시 한 번 살피고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특히 파산 직전인 인천시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꾸리기 위해 전임 시장이 진행했던 개발사업들의 규모를 축소했다. 인천은 시와 함께 도시개발공사, 인천메트로 등의 공기업 부채가 8조6000억 원에 달해 자칫 경기도 성남시처럼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욱이 송 시장 임기 동안 부채가 11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경고도 받고 있다.

이에 송 시장은 송도 인천타워, 테크노파크를 비롯해 밀라노디자인시티, 월미은하레일 등 PF (Project Financing)에 난항을 겪고 있는 사업들에 대해 과감히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결과 1년간의 긴축재정으로 인천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양호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 시장은 인천의 경우 항만과 국제공항이 함께 있는 곳으로 세계적인 물류기지뿐만 아니라 동북아 경제허브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정책을 서둘러 시행하고 있다.

송 시장은 송도국제도시에 삼성 바이오단지를 비롯해 국내외 대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했다. 향후 국내 5대 대기업을 모두 유치해 인천시를 명실상부한 자유무역지역으로 키운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경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인지 송 시장은 한미 FTA 문제에 있어서는 민주당과는 다른 견해를 보인다.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한미 FTA 재재협상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 정부인 노무현 정부에서도 못했던 독소조항 개정을 이명박 정부에게 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을 비판했다. 자신들이 여당일 때 했던 일을 야당이 되었다고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며 차라리 보완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 시장은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공약을 바탕으로 계양산 골프장 설립계획을 백지화시키고 그곳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정책을 실행해 나가고 있다. 또한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실현했으며 무상보육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혀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안보문제에 있어서도 송 시장은 특유의 발전계획을 접목시켜 지정학적으로 북한과 근접해 있는 서해5도가 보호되고 발전되어야만 안보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발전과 분배의 투 트랙을 구사하고 있는 송 시장이 최근 송도에 투자병원(영리법인병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른바 ‘귀족병원’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투자병원이 설립될 경우 지금의 건강보험시스템이 붕괴되는 등 공공의료제도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지난해 송 시장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의료민영화’ 반대를 주장하며 인천시민들의 동의를 받은 부분이기에 시민사회는 크게 분노하고 있다.

인천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2014년 아시안게임 진행이다. 이를 위해 주경기장을 건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어 차질을 빚을 가망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송 시장은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건설비용 지원을 두고 중앙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다.

결국 송도 투자병원 설립과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완공을 어떻게 이뤄내느냐가 송 시장의 향후 행보에 중요하게 작용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 시장직을 수행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송 시장은 언젠가는 대선에 출마할 인물로 얘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행보와 말에는 거침이 없었고, 한 번 실행에 옮기면 작든 크든 결과를 도출해냈기 때문에 송 시장에 대한 인천시민들의 기대는 계속해서 커져가고 있다.


최문순, 친근한 외모지만 확고한 신념 가져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1956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해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 영어영문을 전공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해인 1984년 MBC 보도국 사회부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995년 노조위원장을 맡았으나 1년 뒤에 해직되고 만다. 이후 최 지사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의 위원장과 전국언론노조 초대위원장을 맡게 된다.

2001년 다시 MBC에 복직돼 여러 부서를 거치다가 2005년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보통의 방송사 사장은 경영 역량을 갖추면서도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이 사장직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최 지사는 공모를 통해 당당히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것도 부장의 위치에서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며 당시 대구MBC 사장이었던 이긍희 사장과 경선에서 맞붙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한 번 사장 공모를 통해 사장이 됐다. 그가 선거에서 ‘승부사’의 기질을 보여준 것은 아마도 이 두 번의 사장 공모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3년간의 사장직을 수행한 후 2008년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다. MBC 사장직에 오른 것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사장직에서 벗어나 곧바로 국회의원이 된 것 또한 놀라웠다.

그러나 최 지사의 국회의원 활동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문제를 놓고 벌어진 촛불집회에 최 의원은 적극적으로 참여해 밤을 새며 시민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얘기했다. 이때 붙여진 그의 별명이 ‘길바닥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으로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빗물로 세수하면서 오랜 기간을 시민들과 함께한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당시 최 지사의 명함은 일반 국회의원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어디에도 국회의원의 상징인 금장 무궁화 무늬가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 지사는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 찬 인물로 평가된다.

2009년 7월 미디어법이 한나라당에 의해 강행처리 되자 당시 최문순 의원은 정세균 대표, 천정배 의원과 함께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의원실을 폐쇄한 후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는 뙤약볕 아래서 천정배 의원과 ‘1천만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 후 국회에 돌아오긴 했지만 최 지사는 또 한 번 국회의원 사직서를 낸다. 바로 강원도지사를 뽑는 선거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선거에서 그와 대결할 사람은 자신의 고등학교 5년 선배이자 MBC 입사로는 10년 선배인 엄기영 전 MBC 사장이었다.

최 지사가 ‘길바닥 국회의원’으로 얼굴을 알리기는 했지만 지명도에서는 엄기영 전 사장에게 한참 밀렸다. 최 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광재 전 지사의 후광과 반한나라당 정서가 맞물리면서 최 지사는 엄기영 후보를 물리치고 강원도지사에 당선됐다. 민주당 내에서도 ‘강원도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최 지사는 지사가 된 후 강원도민의 숙원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고 결국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며 강원도 발전의 큰 밑바탕을 만들었다.

최 지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낙후된 강원도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강원도를 세계인들이 찾아올 수 있는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최지사는 세라믹신소재와 바이오, IT클러스터인 강릉과학산업단지에 투자기업을 속속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이밖에 대학교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록금 없는 강원도립대학교 육성계획을 발표하는 등 복지에 힘을 쏟고 있다.

이와 함께 도교육청과 함께 유치원·초·중·고 학생에 대한 무상급식 실시와 친환경 급식 확대를 위한 지원체제를 마련하기로 해 강원도의 복지를 한 단계 끌어올릴 계획이다.

최 지사는 “사람에 대한 투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에 대한 투자”라며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