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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2배 행복2배]/내가 만난 문순c

최문순의 ‘하늘’은 어디?


 

‘지금 문화방송 보도국에서 출입처를 갖고 있지 않은 유일한 조직이 있다. 바로 기동취재반이다. ’관‘의 시각이 아닌 대다수의 국민들의 다수 국민들의 시각에서 뉴스를 보는 조직이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시각이 아닌, 낮은 데서 올려다본 시각을 반영한 조직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높낮이가 없는 평평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조직이다. 이제 우리도 눈높이 보도를 할 때가 됐다. 우리 자신의 눈높이를 낮춰 제대로 된 시각을 찾을 때가 됐다...’

  <1993년 6월 문화방송 사보 중 최문순 기자 기고 글 중 일부>

 



최문순 기자가 치열하게 현장에서 살아갈 당시에 썼던 글입니다.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보도. 그것이 최문순이 추구했던 기자의 기본 정신이었고. 그것이 ‘정통 탐사보도’의 롤모델인 카메라출동을 만들었습니다.

 

최문순의 당시 동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그는 전화통화를 할 때도 마치 상대방이 앞에 있는 것처럼 ‘네, 네’하면서 정성스럽게 받는다. 실제로 소탈하고 꾸밈없는 그의 분위기 때문에 취재원들은 긴장을 풀고 속내를 잘 털어놓는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최문순의 태도는 변함이 없습니다.

 

노조위원장이 됐을 때는 수백 명에 달하는 노조원의 이름과 얼굴 명단을 전부 받아 외는 한편, 수십-수백 개 조직으로 퍼져있던 연맹체 단위의 노조를 하나(전국언론노조)로 합치는 작업을 위해 직접 만나서 설득했습니다.

 

광우병 촛불 시위 이후 촛불 시민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탄생한 그의 私조직, 내친구 문순c 팬카페 모임에서, 카페 가입을 종용하는 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페 회원들의 이름과 사진, 인적사항을 모두 저에게 넘겨주세요. 여러분들은 서로를 다 아시잖아요. 저 역시 카페 회원이 되려면 여러분들을 다 외우고 머리에 기억하고 있어야 (카페에)가입할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건방져 보일 것 같다’는 이유로 높은 연단에 올라 마이크 잡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최문순,

가끔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겸손함이 지나친 모습에 궁금증을 갖고 있던 차였는데, 그의 동생 최무순 사장을 만나고 나서야 궁금증이 해결되었습니다.

 

“아버지가 23년 동안 군인 생활을 하셔서 주변에서는 ‘애들을 엄하게 가르쳤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많이 했을 텐데요.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무척 다정하셨고, 항상 우리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하려고 많이 노력하셨어요. 대학생이 된 형과 ‘다소 보수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정치 문제를 놓고 가끔 열띤 논쟁이 오고 갔지만 항상 형의 생각을 존중해주셨어요. 우리를 위해 눈높이를 낮추셨지만 형제들 간에 형과 동생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잡아 주셨지요. 저와 제 동생은 형을 무척 존경합니다. 형도 저희를 존중하고요. 그게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가르치신 가정교육입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혁신적인’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최문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지만, 어릴 적 ‘권력과 힘’의 상징이었던 아버지가 ‘힘’이 아닌 ‘소통과 배려’를 가르친 부분은 최문순의 한 부분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만듭니다.

 

기자 최문순의 하늘은 시청자와 취재원이었습니다.

노조위원장 최문순의 하늘은 노조 조합원이었습니다.

국회의원 최문순의 하늘은 국민이었습니다.

 

이제, 최문순의 하늘은 누가 될까요?

최문순의 눈높이 정치에 한번 푹 빠져보시죠.




-by 권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