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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의정활동]/문순c네 식구들 이야기

김예슬이 스웨덴 대학생이었다면 자퇴했을까


김예슬양의 고려대 자퇴가 핫이슈가 된 한주였습니다.

http://v.daum.net/link/6136399


 

김양은 자보를 통해 "학비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고 밝혔죠. 마음이 아팠습니다. 문순c네에서 일하는 저 추풍섬도 고려대를 얼마 전 졸업했거든요. 문득 김예슬양이 스웨덴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전 1년간 스웨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습니다. 때문에 스웨덴 대학과 한국 대학 간 비교가 자연스레 됩니다.


고려대학교의 한학기 등록금은 (인문계 기준) 약 360만원입니다. 저는 두학기 학비 700만원 가량을 내고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교환학생은 1:1 교환이 원칙이며, 모교에 돈을 내게 돼 있습니다. 즉, 제가 고려대학교에 돈을 내고 웁살라 대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같은 기간 웁살라대 학생 누군가가 웁살라 대에 학비를 내고 고려대학교에서 공부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합니다. 고려대학교의 일년 등록금이 최소 700만원인데 반해, 웁살라 대학의 등록금은 0원이기 때문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모델 국가답게 스웨덴은 대학까지 무료교육입니다. 결국 저는 700만원을 내고 공짜 스웨덴 웁살라대 교육을 받은 거고, 저와 맞교환된 스웨덴 대학생은 0원 내고 700만원짜리 고려대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스웨덴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지냐? 아닙니다. 제가 있었던 Uppsala 대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15명 배출한 학교입니다. 실제로 체감한 수업의 질도 고려대학교의 그것과 비교할 때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진 않았습니다. 교육수준을 논외로 치더라도, 한국의 명문대와 스웨덴 명문대 간 학생 교환은 얼핏 보면 조건이 엇비슷하지만, 단순히 등록금만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마침, 우리나라의 대학등록금 대출금리가 OECD 최고 수준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120739

 

기사에 따르면 OECD 주요 회원국들은 올해 취업후상환학자금 ICL의 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영국과 뉴질랜드는 0%이고요, 스웨덴은 2.1%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현행 ICL 대출금리는 무려 5.7%입니다.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이지만 고금리가 여전하죠. 취업후 상환이라고 정부가 인심썼지만, 그럼 뭐합니까. 이자가 이렇게 센데.



기사를 읽다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스웨덴은 등록금이 0원인데, 왜 학자금 대출금리가 존재할까? 그래서 스웨덴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대답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Yeah, the government take all the money from our parents and then lend it to their children... so, yeah we borrow for our living expenses, but then we don't have to care about helping our children out when they study"


내용인즉슨, "대학교육은 공짜다. 부모세대가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다. 우리도 지금은 이렇게 무료로 공부하지만 나중에 부모세대가 된다면 마찬가지로 많이 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학자금 대출 ICL이란 것은 대학 등록금이 아니라 대학생에게 필요한 생활비를 의미하는 게 맞다"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나니 호기심이 해결되면서 동시에 스웨덴 학생들이 마구 부러워졌습니다. 양질의 교육을 무료로 받는 주제에 생활비도 2.1%의 저리로 빌리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Erik의 경우, 대학생활을 하면서 한달에 50만원 정도 정부로부터 용돈을 받더군요. 알고보니 그게 ICL을 통한 돈이었습니다. 즉, 취업 후에 상환하는 생활비였던 것이죠.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보면, 50만원X 12달= 600만원. 600만원X 4=2400만원이니 단리로 2% 정도를 대강 적용한다면 50만원이 좀 넘겠죠. 정말 부럽지 않습니까? 학비도 공짜인데, 대학 4년 생활비를 빌려도 아무리 많아야 100만원 안되는 이자를 취업 후에 나눠서 상환하니까요.


우리 대학생들은 어떻습니까? 사립대에서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싼 인문계 4년 등록금은 못해도 3000만원입니다. 거기에 5.7%를 복리로 적용하니, 허리가 휘죠. 생활비 대출은 꿈도 못 꿉니다.


그렇다고 힘들게 등록금 내면서 대학 졸업장을 가져도 취업 문턱은 바늘 구멍이죠.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를 시작해야 하고요.

 

이쯤되면, 누군가 김예슬 양처럼 공개적으로 '대학교육을 거부한다'며 자퇴할 만 하지 않습니까?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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