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5호선을 갈아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인파와 함께 역내를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가세요. 오른쪽으로 가세요"
사회봉사를 하는듯한 청소년의 손에는 형광색 지휘봉까지 들려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타기위해 지나가던 사람들은 느닷없는 소년의 호통을 들어야했다.
기둥을 사이에 두고 왼쪽편으로 걷던 나를 비롯한 몇 사람들은 소년의 지휘봉과 구령에 맞추어 황급히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못함은 물론이요,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건 기습 공격이었다. 정말!
정신을 차려보니 사방에는 '우측통행'표시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소년은 계속 짜증스런 목소리로 사람들을 '계도'하고 있었다.
아니,,,,왜????
선진국에서는 다들 우측통행을 하니까?
좌측통행은 일제의 잔재니까?
뭐, 다 좋다.
온 국민이 일사분란하게 오른쪽으로 걷는다하여 국가 경제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굴러갈런지는 의문이지만, 인파로 붐빌 때나 재난과 같은 비상시에 '우측통행'은 유용한 규칙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국가의 방침(?)을 바꿨다는 것 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 통행이 불편한것도 아니고, 텅 비어있는 길을 지나가던 자들의 뒷통수에 호통쳐서 다시 오른쪽으로 되돌려 걷게하는것은 무엇을 위함인지 모르겠다.
에스컬레이터의 방향 따위야 뉴스에서 호들갑을 떨지 않았더라면 사실 좌측통행과 무슨 연관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고 살았을테니 국가에서 알아서 바꾸면된다. 그대로 사람들은 이용할 수 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따르게 되어있다. 그정도만 해도 국가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그렇게 지휘봉을 휘두르지 않아도,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국민들은 알아 듣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발
무지몽매한 백성을 계몽하려는 마초놀음은 좀 거두어 주었으면 한다.
여지껏 살면서 사람이 역주행으로 사람과 충돌하여 사망했다는 소식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출퇴근 지하철 환승로를 제외하고 건너편 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충돌할까봐 불안했던적이 얼마나 있는가? 자연스럽게 피해가고 비껴주면 그 뿐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면된다. 그건 그냥 본능이다.
걸을 자유를 제한하는것, 걸을 방향을 제한하는것은 최소한의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야한다. 물론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현저한 공익을 위해서만 그리해야한다.
제한이 아니라 그냥 '보행문화'라고?
그럼 그렇게 소리쳐서는 안된다.
왼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불러세워서는 안된다.
갑자기 오른쪽으로 걸으라 강요해서도 안된다.
천천히 바뀌는게 문화다.
국가가 주입한다고 갑자기 생기는 문화는 없다.
꼭 필요한 때와 장소에서 자연스레 물흐르듯 나타나야 그것이 문화다.
사람들을 갑자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걷게하는 전지전능함을 과시하고 싶다면
그냥 차라리 법을 제정해라.
'우측보행법'
공공장소에서는 반드시 우측으로만 보행하여야하며, 이를 어길 시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국가경제의 효율과 원활한 보행을 위하여 시속 3km 이하의 속도로 보행시 통행을 제한할 수 있다.
국가여!
왼쪽으로 걸을 자유에 참견말라.
필요한 상황이 되면 니가 소리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오른쪽으로 걸을테니..
함부로 명령하지 마라.
내가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한대도 그것은 너의 전지전능함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나의 선한 본능 때문이다.
덕지덕지 붙은 포스터에 써있는 문구마저 곱게 보이질 않는다.
"대한민국이 오른쪽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by 비행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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