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으로 절하고, 힘으로 버틴다”
[체험기] 최문순 의원과 3박 4일 ‘절’을 하다.
양심에 찔리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은 못하겠다.
‘최문순 의원과 함께하는 언론악법 원천무효 2만배 참회와 정진’에 동행취재한 기자는 처음 절을 올릴 때 기자 개인사를 놓고 빌었다. 10분에 50배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는 정진인데, 처음 30분 정도, 그러니까 200배 가까이는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간절히 기원하고, 빌었다.
한편으로는 앞에서 거진 기어다니다시피한 최문순 의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속으로, ‘죄송합니다. 부모님꺼 다 빌고 언론법 원천무효를 빌겠습니다’라고 사죄를 드렸다. 그런데, 30분이 지나고 양다리 허벅지 깊은 곳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싶은 근육들의 항의가 들려올 때 쯤. 머릿속은 텅 빈 백지 상태가 되었다.
숨이 가빠오고, 얇게 입어 한기를 느꼈던 몸에 후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화계사 대적광전에 모신 세분 부처님의 얼굴도, 부처님을 향해 독송하는 스님의 뒷모습도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무릎의 무게가 깊이 패인 방석만이 눈에 들어온다.
최문순 의원실 조한기 보좌관의 손에 들린 죽비가 ‘딱, 딱’ 소리를 내며 일어서고 앉는 시간을 일러주는데, 40여분 쯤 지나자 조용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왜 이렇게 빨리 치는거야’
간간히 고개를 들어 최문순 의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깡마른 다리와 살짝 굽은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육안으로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가볍게 신음소리도 들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다’는 생각과 ‘그래도 정성을 함께 들여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조 보좌관이 치는 죽비 소리가 다음 절을 채근하는 통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다만, 안타까운 모습으로 휘청대는 저 사람의 지금 고행이 그의 업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부디 부처님의 자비로 용서해주시기를. 기도 한마디 더 보탰다.
이것이 23일 수유리 화계사 대적광전에서 시작된 최문순 의원의 2만배 정진 첫날 오후 7시 마지막 참배에 함께한 기자의 생각 전부다.
그 이후 기자는 최 의원과 함께 3일을 더 정진에 참여했지만, 무슨 말을 더하랴. 찢어질 듯한 다리의 고통 이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신의 말씀은 커녕 화만 난다”는 최 의원의 말에 기도에 동참하는 일행은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 역시 “한 시간이 왜 60분인가”라는 원초적인 고민에 빠졌다. 또, 절이 끝나고 걷는 시간 나도 모르게 게걸음을 걷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의 저질 체력을 원망한다기 보다는 “도대체 나는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라며 한탄을 한다.
부처님의 자비를 느끼고 공덕을 쌓아야 하는 절인데, 모두들 말한다. “악으로 절해요. 악으로.”
50분 절, 10분 휴식 원칙아래 50분 내에 400배를 해야 29일 정오까지 2만배를 채울 수 있다. 엉겁결에 기도반장이 된 조한기 보좌관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최 의원에게 ‘지금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최 의원, “정말… 미워”라고 말하며 미적거리며 자리를 쉽게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 “3분만 더 있다가 나가요”라고 힘없이 말하는 최 의원을 보고 일행들은 겉으론 웃지만 속으로는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최문순 의원의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져 급파된 신도에게 ‘절 과외’까지 받고, 손에 바리바리 음식을 들고 온 최문순 의원의 팬카페 회원들의 수많은 지지방문이 이어졌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최 의원인데 손님이 오면 으레 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심지어 집밖 생활을 함께한 천정배 의원이 격려방문을 왔을 때는 언덕길을 뛰어 내려가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보던 보좌진 한마디 한다 “참 이상한 문순c야”
사찰의 하루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그야말로 ‘찰나’처럼 흘러간다.
오전 4시 아침 예불을 시작으로, 6시 아침 공양,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오전 참배를 마친다. 11시 30분에 점심 공양을 하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오후 참배, 4시 30분에 저녁공양,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저녁 참배를 진행한다.
최문순 의원 일행과는 별도로 화계사에서 6시부터 7시부터 진행하는 저녁 예불에는 인근 주민들을 비롯한 20~3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불공을 드린다. 스님의 청명한 목탁소리와 함께 외는 독송은 신자가 아니면 그 뜻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독송이 끝난 후에는 신도들의 바람이 담긴 기도가 이어진다.
보름 남짓 남은 수학능력시험을 치를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바람과 운전하는 남편이 있는 아내의 바람, 취업과 성공을 바라는 젊은이의 바람,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의 바람이 모두 담겨있다.
최문순 의원에게는 올해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딸이 있다. ‘이번에 수능시험을 보게 될 따님이 걸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 의원, 그냥 웃어버리고 만다. 욱신거리는 다리를 연신 주무르던 최 의원은 위태위태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다시 법당 위에 선다.
화계사에 처음 들어올 때 구입했던 법복이 여기서 지낸 날들을 기록하듯 꾸깃꾸깃하다. 그 주름 위에 담긴 최 의원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1만배를 하면 죽은 사람을 살리고,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되려면 3만배를 해야 한다는데 2만배를 꼬박 채울 최 의원의 기도에는 언론법 이외에 더 무엇이 겹쳐졌을까.
가을 하늘 싸늘한 밤공기가 사찰 처마를 가르고, 멀리서 수유동 번화가의 번쩍대는 불빛이 아른거린다. 저녁 9시,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이들과 술 한잔을 기울일 ‘한창’ 때이겠지만 사찰의 9시는 세상과 모든 연을 끊은 듯 적막하기만 하다.
2만배 정진 6일째를 맞은 최문순 의원 일행들. 이날 진행된 10.28 재보궐 선거 결과도 결과지만 헌법재판소 판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하루 남았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긴 싸움도, 2만배 정진도. 하루의 끝을 알리는 화계사 범종이 대적광전의 불을 끌 수 있을지언정, 불안함과 기대감, 초조함으로 뜬눈으로 지새울 최문순 의원 일행의 마음의 불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리가 아프다. 허리도 휘청댄다. 실로 간사한게 사람의 몸이라고 3일만에 사찰 생활에 몸이 익었는지 저녁 6시부터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아, 지금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글 / 권경희
사진 / 한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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