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순c네 말]/인터뷰모음

“미디어법 합헌결정? 노숙 정배 쭉 가는거지”

“미디어법 합헌결정? 노숙 정배 쭉 가는거지”

[인터뷰] 천정배 의원 “실천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

 

“우선 저 자신에 대한 반성이랄까요? 저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게 됐습니다. 어쨌든 그동안 여의도 정치라고 흔히 불리는 의원 활동을 하면서 정작 시민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장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의 온도차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투쟁을 하면서) 많은 시민들과 온도차 없는 그런 느낌을 항상 가져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한낮의 햇볕이 없다면 결코 따스하다고 볼 수 없는 10월 셋째 주 어느 날의 헌법 재판소 앞 길거리에서 천정배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100일에 가까운 원외 투쟁을 진행하면서 느낀 소회에 대한 답이다.

 

십수년에 가까운 천 의원의 정치 생활 중 2009년은 빼 놓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의 입으로 직접 말했듯, 기존 여의도 정치에 익숙해 온 천정배 의원이 처음으로 집밖을 떠나 거리에 나섰고, 포장마차를 끌기도 하고, 대로변에서 한데 잠을 잤다.

 

시작은 간단했다. 지난 7월 말 국회에서 통과된 미디어법 원천무효 투쟁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 석달간의 투쟁은 그에게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미리 준비된 연설문에 익숙한 그가 변변한 메모장 하나 없이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2시간 동안 연설을 했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던(!) 포장마차의 사장님이 돼서 익숙지 않은 요리를 하는가 하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던 한 50대 목수의 등을 두드리며 잘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보였다. 곁에서 그를 보좌하는 보좌진들도 ‘의원님이 눈에 띄게 바뀌셨다’고 한입을 모은다. 개그 프로그램을 자주 보지만 농담 한마디 하지 않던 천 의원이 이제는 싱글싱글 웃으며 농을 먼저 던진다니 말이다.

 

천 의원은 이번에 진행한 헌법 재판소 앞 노숙투쟁이 지난 2007년 진행했던 한미 FTA 반대 단식 투쟁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말했지만, 지금 천 의원의 행보는 2007년의 그때와는 결이 틀리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준비된 대선행보 아니느냐’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기자는 천정배 의원에게 차마 그 질문을 던지지는 못했다. 헌법재판소 앞 노숙농성에 앞서 ‘자정까지만 진행하시고 근처 숙소에서 주무시라’고 말했다가 된소리만 들은 한 보좌진의 난감한 표정을 보았고, 미디어법 합헌 이후 거취에 대한 질문에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냐’며 되묻는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더 이상 천 의원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질문이 실례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맞설 대안정당으로서의 민주당을 고민하고, 정치인 천정배가 국민들에게 던질 ‘비전’을 말하는 그에게서 이후의 행보를 속으로 추측만 해볼 뿐이다.

 

“우리 많은 국민들이 민생에 관해 비전을 제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한 많은 분들이 민주당에 비전을 제시할 것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고, 도저히 상상도 안갈 만큼 많은 헌신을 하고 계시는 시민분들을 보면서 정치인 천정배 개인으로서도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간밤에도 일흔 일곱 살 된 어르신이 요 앞(헌법재판소)에서 밤을 새고 가셨어요. 뭐랄까. 희망이기도 하고 저한테는 압력인거죠. 침식을 잃으면서 자기 일도 아닌데 ‘사회를 밝게 만들어야겠다, 보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지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오순도순 함께 더불어서 잘사는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는 일념에서 싸우시는 걸 보고 참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어찌보면 상대적으로 유복하게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아 나도 뭔가 좀 그런 분들의 절반이라도 해야겠다’ 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제가 요즘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천 의원은 지난 9월 말 전국을 순회한 민생포장마차 진행 중 울산에서 만난 한 여성 당원이 ‘지금의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어떤 비전도 제시해주지 않고 있다’며 쓴소리를 한 것을 언급하면서 “스스로도 많이 머쓱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또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민주당이, 천정배가 고달프게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뚜렷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이어서 “국민들이 미래에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걸 절실하게 느꼈고 우리 세력이 그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저자신도 정치인으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활동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천 의원은 그 비전으로 ▲ 이명박 정권과 분명한 차별성이 있는 경제 성장 방안 제시 ▲ 민생 복지 국가 건설 ▲ 강고한 기득권 구조에 대한 강력한 개혁 방안 등을 제시했다.

 

천 의원은 인터뷰 진행 내내 마른 기침을 계속 했다. 2박 3일간의 노숙 농성이 끝난 후 27일 최문순 의원이 2만배를 진행하는 화계사를 찾았을 때도 연신 기침을 했다. 최근 강행군을 펼친 탓에 생긴 가벼운 감기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감기가 아닌 천식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선거를 보좌하면서 생긴 고질병이었던 것. 어찌보면 천 의원의 정치 입문병인 셈이다.

 

그런데 그 천식이 지난 한미 FTA 반대 단식투쟁 당시 잠시 나은 적이 있었단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로부터 전수받은 비법(?) 때문이다.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목욕탕에서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하는 냉온욕이 그것이다. 지금은 집과 10.28 재보궐 선거 현장 등을 오가느라 냉온욕을 할 겨를이 없어 천식기가 더 심해졌다. ‘천식이 나아지기 위해서라도 국회에 다시 꼭 들어가셔야겠네요’라고 말을 건넸는데 돌아오는 대답에 빈틈이 없다. “뭐 꼭 국회 들어간다고 목욕탕만 간답디까?”

 

거의 향후 거취에 대한 질문에 천 의원은 다른 질문과는 다르게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했다.

 

“개인거취? 국회의원직 말씀인가요? 저는 지난 7월 24일 최종적으로 직을 버렸습니다. 다만 헌재에서 좋은 결정이 내리면 복귀하는데, 그것은 제 생각을 바꿔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직을 사퇴했던 근본원인이 소멸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천 의원이 헌재에서 좋은 판결이 난다면 “다시 어깨 펴고 목에 힘주고 들어갈 것”이라면서도 “(미디어법 원천 무효 없이)다른 사유로 번복해서 들어가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원내 활동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 중 한명이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원내 활동 못지 않게 거리와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투쟁하고 비전을 함께 제시하는 것 역시 굉장히 크다”며 “최소한 지난 3개월간 원내활동의 공백은 별로 아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4년간 열심히 일하라고 저를 국회에 보내준 제 지역구 주민들이 마음에 걸릴 뿐”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천 의원은 이틀 여 앞으로 다가온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헌법 재판관에 대해 “아마 어려운 환경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소신껏 잘 지켜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천정배 의원의 민생포장마차, 헌법재판소 앞 노숙농성이 끝나고 마치 바톤 터치를 하듯이 최문순 의원의 언론악법 원천 무효 2만배 정진이 시작됐다. 정진 5일째인 27일 가을 햇살이 곱게 물들인 단풍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화계사에 천 의원이 지지 방문을 왔다.

활짝 웃고 있는 천정배 의원과 최문순 의원이지만 천 의원은 마른 기침을, 최 의원은 굽은 다리를 잘 펴지 못하고 절뚝 걸음을 하고 있다.

 

동행 취재한 한 기자가 물었다. “언론법이 합헌 결정을 나게 되면 두분은 어찌 되시는가요?”

 

천 의원, 이렇게 대답한다. “노숙 정배, 만배 문순 계속 하는거지 뭐. 다른게 있나? 허허”

 

천 의원은 이어서 황급히 한창 막바지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 다음 일정 장소를 가기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미디어법 만큼, 10.28 재보궐 선거는 민주당에게나 정치인 천정배에게나 뒤로 제쳐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헌법 재판소 판결일과 재보궐 선거라는 운명의 날이 닿아있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의 친정인 안산 재보궐 선거에서 막판 야당 후보 단일화가 성사돼 내년 4월 지방선거의 야권 통합의 토대를 만들 수 있을지, 또 헌법재판소에서 미디어법 원천 무효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그가 목에 힘주고 어깨 펴고 국회에 재 입성 할 수 있을지, 지금은 누구도 모를 일이다.

 

다만, 결과야 어찌 됐든 2009년을 기점으로 천정배 의원은 거리에 익숙하고, 광장의 힘을 깨우친 업그레이드 ‘노숙 정배’가 됐다는 점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