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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의정활동]/문순c네 식구들 이야기

[문순c의 21년 전 고백]"나는 기자도, 인간도 아니었다"


어제 '체인질링'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1930년대 미국의 무식해서 무서운,

공권력의 실체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보는 내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이, 공권력이, 국가가

상상하기 어려운 폭력을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할 수 있는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니 더욱 끔찍했습니다.

 

우리도 한 80년쯤 지나면,,,

'미네르바'를 주제로 한, '용산참사'를 주제로 한 

보기 불편한 영화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글은

1988년 9월 7일

당시 MBC 사회부 최문순 기자가

MBC 문화노보에 고백했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강산은 두 번이나 변했는데, 언론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일은 여전하네요.

 

by. 비행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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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자도, 인간도 아니었다"

 

실로 참담한 자괴감이 되살아납니다. 딱히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만도 아닌 이유로 공권력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 앞에서 22세의 처녀가 그의 모든 것을 던져 일어선 처절한 몸짓을 외면했던 자신에게 굳이 윤동주의 <서시>가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것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섭니다.

 

저는 이 사건이 발생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서울 중부경찰서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장충동 분도회관에 있던 민통련 중앙본부에 드나들게 됐고, 어느 기자도 그러하듯 정보를 주고받았습니다.

 

전두환 씨의 아들 전재국의 경호원들이 논현동 백주대로에서 총질을 하고 전자봉으로 주민을 폭행한 사건이 민통련 발행지에 실린 지 며칠 후인 1986년 6월 말 민통련에 들렀던 저는 민통련 인천지부에서 보고해온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1보를 접했습니다. ‘우리의 딸 권양’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그 이름 석 자가 참혹한 고통과 수치를 담고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접하고 ‘건전한 상식’과 ‘사회 통념’에 비추어 권양의 진술을 전적으로 믿지 않을 수 없었으나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기자의 본분 앞에 크나큰 당혹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당시 부천서 정보2계장과 권인숙과 함께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또 하나의 이름 ‘문귀동’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으나 ‘운동권 학생들의 전략’이라는 가증스러운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확인 과정은 어렵사리 얻어낸 권양 부모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그녀의 부모와 통화하는 순간 끝났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춘천지법 원주지원 사무과장직을 그만둔 권양의 아버지 권영출 씨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고 애원했고, 그녀의 어머니 허종순 씨는 몸져누워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확인은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각 회사에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저는 ‘쓸데없는 것을 취재하러 다니는 놈’이 되고 말았고, 기사는 불러보지도 못했습니다. 이후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게 되는 이 사건을 전두환 정권의 하수인이었던 우리 회사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짓’이었고, 철저하게 묵살됐습니다.

 

이 사건은 권양의 고소와 함께 7월3일자 모 석간지에 사회면 1단 기사로 처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신문에 사설이 실리기 시작하고, 모 신문사는 사회면 톱기사로 처리하고 있는데도 MBC는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침묵을 지켰습니다.

 

당시의 보도지침은 “부천서 성폭행 사건, 검찰 발표 때까지 관련된 모든 기사를 일체 보도하지 말 것, 부천서 사건의 검찰 발표 시기에 관한 것이나 부천사건 항의시위, 김대중의 부천사건 언급 등 이와 관련된 일체를 보도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1986년 6월14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보도한 우리 기사의 일부는 권양이 “문제의 학생 간의 연대의식 고취와 조직 이탈 방지 등을 위해 성(性)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해 정부의 입장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마치 수사당국 고문, 폭행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뒤집어 씌우는 전술을 쓰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래서 ‘성을 도구로 사용’한 문귀동은 풀려나고 ‘성의 도구가 된’ 권인숙 양은 마치 수사당국이 성고문을 한 것처럼 주장해 1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의 사태 추이는 세상이 모두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후에도 많은 뒷이야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각 언론사 간부들이 이 사건을 축소, 왜곡보도하는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는 이야기, 또 “여의도의 한 술집에서 한 검사가 다른 손님을 때려죽인 뒤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검찰이 권양 사건을 사실대로 조사해 발표하려고 했으나 전두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사실을 조작했다”는 이야기 등입니다. 저는 이후에도 ‘성고문 용공조작 범국민 폭로대회’에서 권양 사건은 아무것도 아닌,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성고문 사례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기자가 아닌 것은 물론 인간이 아니었습니다.